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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인물/성씨별 유명인

사카모토(坂本) 성씨를 지닌 유명인은 누가 있을까?

by 미나미나(MINAMINA) 2024. 10. 20.

안녕하세요~ 이웃나라인 일본 문화를 탐구하는 미나미나입니다.
여러분들은 사카모토라는 성씨를 듣고 가장 먼저 누가 떠오르시나요? 오늘은 일본에서 약 31만 명이 쓰고 있는 사카모토 성씨를 가진 유명인 5명을 모아봤습니다. 모든 인물들을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혹시나 원하시는 인물이 없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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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출생: 1836년, 토사번(현 고치현)
    사망: 1867년 12월 10일(향년 31세)
    직업: 토사번사, 지사(志士), 경영자

    사카모토 료마는 1936년 토사번(현재의 고치현)에서 태어난 에도막부 말기의 지사로, 일본의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도 상당한 인지도와 인기를 얻고 있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19세기 일본에서는 천황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배척하자는 '존양왕이(尊王攘夷)' 운동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막부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납하게 된 사건인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일어나게 됩니다. 대정봉환에 대한 건의는 토사번으로부터 이루어졌고, 사카모토 료마는 이에 대한 구상을 담은 선중팔책을 입안한 인물로, 에도 막부와 천황 사이의 평화적 권력 이양에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대정봉환이 이루어지고 한달 뒤, 오미야 여관에서 습격을 받고 암살당해 1867년 3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사망 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급속한 근대화를 이루었고, 사카모토 료마는 현대 일본의 영웅으로서 널리 존경받고 있습니다.

    2. 사카모토 큐(坂本九)

    출생: 1941년 12월 10일, 카나가와현
    사망: 1985년 8월 12일
    직업: 가수, 배우, 방송인

    사카모토 큐는 쇼와 시대에 활동하던 연예인으로, 큐짱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었습니다. 1958년에 이노우에 히로시와 밴드 '더 드리프터즈'의 멤버로서 가입하여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였는데, 제 3회 일본극 웨스턴 카니발에 첫 출연해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1960년에는 솔로 가수로 전향하였고, 이때 발매한 싱글 「슬픔 60살(悲しき六十才)」이 10만장의 매출을 기록해 첫 히트가 되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위를 보고 걷자(上を向いて歩こう)」라는 곡을 발매하였고, 이 곡이 국외에서까지 대히트하여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3주 연속 1위를 달성했습니다. 1964년에는 미국 내 레코드 누계 판매 매수가 100만장을 넘어 일본인 최초로 골드 디스크를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수 활동 외에도, 방송인으로서 TV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기도 하였고 영화·드라마·무대에도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활약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자신의 전 매니저인 카가와 히로유키가 입후보한 하비키노시 의원 선거의 응원차, 비행기로 이동 도중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에 휘말려 안타깝게도 향년 43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3.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출생: 1952년 1월 17일, 도쿄도
    사망: 2023년 3월 28일
    직업: 음악 프로듀서, 작곡가, 피아니스트

    KAB America / CC-BY

    1970년대 후반부터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사카모토 류이치는, 당시 속해 있던 YMO라는 그룹이 국내외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인기 뮤지션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음악 활동 외에도 프로듀싱 및 편곡에도 자주 참여하는 편이었는데, 클래식 음악, 민속 음악, 대중 음악(특히 테크노팝) 등 여러 장르에서 능통한 인물이었습니다. 1987년에는 일본인 유일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음악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영화나 영상 작품에 배우로 출연한 경력이 있으며, 여러 미디어에서는 환경 문제와 헌법과 관련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2014년에 두경부암을 투병 사실을 밝히며,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콘서트 등의 활동을 중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는데요.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컨디션이 좋은 날은 자택 스튜디오에서 창작 활동 등을 이어갔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결국 2023년 3월 28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4. 사카모토 하야토(坂本勇人)

    출생: 1988년 12월 14일, 효고현
    직업: 야구 선수

    (출처: 読売ジャイアンツ)

    사카모토 하야토는 요리우리 자이언츠 소속의 프로 야구선수로, 포지션은 우투우타의 내야수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그는 2006년의 고교생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게되어 프로에 입단합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한 팀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원클럽맨으로, 여태까지 획득한 주요 타이틀은 2012년의 최대 안타, 2016년의 최고 출루율 및 타격왕, 골든 글러브 상 5회(2016, 2017, 2019~2021), 최우수 선수(2019년) 등이 있습니다. 센트럴 리그의 유격수로서는 최초의 타격왕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 대표팀으로서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하며 WBSC 프리미어 12 우승, 2020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도 기여를 하였습니다.

    5. 사카모토 후유미(坂本冬美)

    출생: 1967년 3월 30일, 와카야마현
    직업: 엔카 가수, 배우

    (출처: 소속사 UNIVERSAL MUSIC JAPAN)

    중학생 시절부터 엔카 가수를 꿈꿔왔던 사카모토 후유미는 1986년 NHK의 '勝ち抜き歌謡天国'라는 프로그램에서 명인의 자리에 오르고, '간사이 엔카 대상 가라오케 콩쿠르'에서 우승 등을 계기로 엔카 가수로서 데뷔합니다.

    1987년에 발매한 싱글 「요란한 북소리(あばれ太鼓)」의 판매량이 80만장을 넘어 데뷔 직후부터 '제29회 일본 레코드 대상' 와 같은 수많은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꾸준한 앨범 발매를 이어오며, 홍백가합전에만 35회 출전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로, 간간이 배우로서 TV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합니다.